주요 산업의 RE100 위해 재생에너지 4.5배 필요… 인허가 절차·전력시장 개선 필요
엠버,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 현황·탄소 집약적 주요 11개 기업 에너지 소비 분석
[에너지데일리 변국영 기자] 국내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국내 기업들의 RE100 달성을 위한 수요량에 크게 미달해 추후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에 큰 타격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현황과 탄소 집약적인 주요 11개 기업의 에너지 소비를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국내 풍력·태양광 발전량과 철강, 전자, 반도체 등 온실가스 배출이 가장 많은 상위 11개 기업의 전력 수요를 비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베스틸, 현대모터스, 삼성에스디아이, DB메탈, 포스코, LG전자 11개 기업은 2020년 기준 총 98TWh를 소비했다. 이는 2020년 21.5TWh에 불과한 한국의 풍력·태양광 발전량보다 4.5배 많은 전력 소비량이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국내 산업계가 저조한 재생에너지 발전으로부터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애플, 구글, BMW 등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사이자 고객사들은 일찌감치 RE100에 합류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이 RE100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수출 경제에 큰 리스크가 되는 까닭이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 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도 2030년까지 국내 산업계가 RE100 달성에 실패한다면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 수출이 각각 15%, 31%, 40%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EU 회원국의 탄소국경세 도입에 가속이 붙으면서 기업 재생에너지가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주요 기업들의 RE100 동참이 불가피한 가운데 충분치 않은 재생에너지 공급이 기업들의 적극적인 RE100 참여를 어렵게 할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는 움직임과 대조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보급은 평균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엠버의 ‘국제 전력 리뷰 2022’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 비중은 4.7%에 불과했다. 아시아 주변 국가인 일본, 중국, 몽골, 베트남을 비롯해 전 세계 풍력·태양광의 발전 비중이 처음으로 평균 10%를 넘어선 것에 비해 한국은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다.
엠버는 지난 5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과학자들이 발표한 ‘기후변화 완화 보고서’를 인용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43% 감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엠버는 10년 안에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사용이 비중을 ‘0’으로 낮춰야 이 목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엠버의 이유니 아시아 전력데이터 분석가는 “IPCC 과학자들은 100여 개에 달하는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빠른 방법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며 “재생에너지 목표 상향과 설비 확대는 에너지 및 기후 위기 극복은 물론 한국 수출 경제에도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한 재생에너지 공급뿐만 아니라 기업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전력계통과 정책의 개선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용과 시간을 더 소비하도록 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복잡한 인허가절차가 간소화돼야 하며 재생에너지 판매와 구매가 좀 더 유연하고 탄력적일 수 있도록 전력시장이 재생에너지 친화적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