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전기요금 문제, 당장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E·D칼럼] 전기요금 문제, 당장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 에너지데일리
  • webmaster@energydaily.co.kr
  • 승인 2022.07.01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호 / 가천대학교 교수 (경제학박사)

요즘 한국전력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요약하자면 국제유가 상승과 신재생에너지 보조금, 원전비중 축소 등으로 원가가 크게 상승하였으나 전기요금 동결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방만한 공기업 운영방식이 적자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던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전의 재무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도 한다.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요금을 인상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어떠한 사안이 발생하면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대책을 수립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에너지문제는 이슈를 불문하고 합리적인 의견 제시나 객관적인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체로 특정 전원과 밀접하게 관련되거나 진영논리를 대변하는 언론에 의해 에너지 갈등이 지속되고 정책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한전의 적자가 앞서 언급한 몇가지 현상적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주된 원인인 유가 상승 외에도 불합리한 시장구조, 무원칙한 요금규제, 브레이크 없는 보조금의 영향도 크다.

독점판매자인 한전은 도매시장에서 소위 시장가격으로 전기를 구입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소매가격 즉 전기요금은 시장가격이 오르거나 말거나 정책적 판단만을 기다릴 뿐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요금을 산정하는지에 대한 기준이나 절차도 유명무실하다. 이러다 보니 유가 하락 등으로 흑자가 발생하면 흥청망청 쓰기에 바쁘고, 지금처럼 적자로 전환되면 아우성이다. 불과 얼마 전인 2020년만 해도 흑자가 4조원 이상 발생했지만 흔적도 없다. 어떻게던 남은 돈을 써야 하니 오히려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을 조장하게 된다.

국방, 치안과 같이 국민안녕과 질서에 필요한 무차별적 공공서비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재화나 서비스는 공급비용에 상응하여 가격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만약 가격이 비용에 비해 현저히 낮다면 수요는 늘어날 것이고 어떤 형태로던 적정원가에 상응하는 비용을 누군가는 지불하게 된다.

흔히들 전기는 공공재니 공익적 서비스니 하면서 국가가 마땅히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전력은 소위 ‘보편적 공급’이라는 원칙에 의해 오래전부터 지원되고 있으며 요금도 낮다. 우리나라 전력소비 수준이 생존의 범위는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전 얘기다. 몇몇 에너지부국을 제외하면 우리의 일인당 전력소비량은 세계 선두그룹이다. 막대한 산업동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기기보급이 늘어나고, 냉난방도 일반화되고 있다. 에너지를 전기의 형태로 사용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에너지시스템간 통합도 늘어나고 있다.

소위 당국에서 전기라는 재화의 가격을 막무가내로 통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전기재화를 가지고 물가관리 수단이나 공기업 효율성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도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며 정부의 또 다른 책무다.

사람들은 수시로 바뀌는 주유소 가격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전기요금 지출액은 통신요금이나 자동차 연료비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기요금 문제만 나오면 국민부담을 빌미로 계층간의 갈등을 조장하거나 엉뚱한 에너지 진영논리나 정치적 논쟁거리로 끌고 간다.

요금이 오르면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일부 제조업체는 영향을 받겠지만 그렇다고 국가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제조업 원가 중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이보다는 오히려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나 과도한 냉난방과 같은 에너지 낭비가 문제다.

무엇보다도 전기요금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입증되지 않은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유인부터 차단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회사의 요금수준 산정기준, 주기적 변경 및 승인을 독립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제도설계와 법적장치를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정치권이나, 언론, 이익집단 대변자, 물가당국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독립적인 에너지 거버런스를 도입하여야 한다. 정치권이나 관련 부처의 간섭이나 개입을 최소화하는 독립적 위원회 설치가 선결 조건이다.

수년째 반복되고 있는 가치편향적 논리나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원전, 신재생과 같은 에너지 논쟁에서도 극단적인 조건에서나 나올 수 있는 과도한 수치로 사실을 호도해서도 안된다. 원전도 화석연료도 재생에너지도 신기술도 모두 우리 전력시스템에서 필요한 역할과 적절한 몫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원간의 역할이나 비중이 변하겠지만 어느날 순식간에 바뀌기는 어렵다. 이상과 현실간의 간극을 메꾸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울러 도매가격과 소매요금이 즉시 연계될 수 있는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또한 비용변동을 주기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요금조정메커니즘’을 적용하여야 한다. 이는 지금 당장도 가능하며 많은 국가에서 오래전부터 적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간 요금차이의 많은 부분은 원가차이도 있지만 에너지정책에 따라 부과되는 외부비용 성격의 부담금이나 세금에도 영향을 받는다. 다음으로 전력시장에서 에너지원별 조달방식의 다양화와 가격입찰을 통해 시장기능을 회복한다면 산업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왜곡된 요금수준은 산업생태계 조성이나 고용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IT, 스마트그리드, 4차산업혁명과 같은 장밋빛 청사진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였지만 에너지생태계가 제대로 조성되었는지 의문이다. 여기저기 고장난 신호뿐인데 어찌 빨리 달리기를 바라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주)에너지데일리
  • (우)07220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38길 13-7 주영빌딩 302호
  • 대표전화 : 02-2068-4573
  • 팩스 : 02-2068-45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병훈
  • 제호 : 에너지데일리
  •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719
  • 등록일 : 1999-07-29
  • 인터넷등록번호 : 서울 아 01975
  • 등록일 : 2012-02-16
  • 발행일 : 1999-09-20
  • 발행인 : 양미애
  • 편집인 : 조남준
  • 에너지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너지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nergydaily.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