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기술개발,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E·D칼럼] 기술개발,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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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2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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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융합학과 교수(경제학박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80년 동안 세계경제와 국제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기술적 우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잘 구축된 사회간접자본과 시스템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막대한 인프라, 수많은 전문인력과 축적된 기술력이 토대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들어 ‘과학기술입국’을 구호로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해외과학자를 유치하고, 예산을 쏟아부어 왔다. 지금 우리나라 R&D 예산 비중은 약 5%이며, 이는 미국·일본·독일의 3~3.5%를 초과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이들 국가에 비해 절대규모는 적지만 그동안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제 양적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 니즈 충족과 성과 확대를 위한 시스템 재구축을 생각할 때다.

일례로, 미국의 에너지분야 기술개발은 1930년대부터 만들어진 국립연구소(National Lab.)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에너지부(DOE) 산하에만 20여개 연구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연구소는 역할이나 비중은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미국의 국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립연구소 하나만 하더라도 5000명 안팍의  인력, 거대한 캠퍼스와 시설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타운을 이루고 있다.

이 중 영화 오펜하이머의 배경이 된 로스 알라모스, 캘리포니아의 로렌스 버클리(LBNL)와 로렌스 리버모어, 북핵 문제로 잠시 거론되었던 테네시의 오크리지, 일리노이의 아르곤, 뉴멕시코의 산디아, 콜로라도의 재생에너지(NREL) 연구소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곳이다. 막대한 자원도 중요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과 운영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한국전력이 수행하던 전력공급사업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기능이 적지 않았다. 기술개발, 에너지효율, 전기안전, 발전소 주변지역 및 도서벽지지원 등 무려 20개에 이르렀다. 여기에 소요된 비용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전력산업기반기금이다.

외국에서도 에너지분야의 기술개발, 수요관리, 재생에너지 보급, 저소득지원 등 공익적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소위 ‘공공재부담금(PGC:Public Goods Charge)’이라는 기금을 조성하여 활용하고 있었다. 전력기금은 해마다 3조원 넘게 조성되고 있다. 전력기금 중 대략 30% 정도가 기술개발과 이런저런 이름으로 인프라나 지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력기금뿐만 아니라 과기부 등 정부부처 에너지 R&D 예산과 원자력기금을 포함하면 에너지분야 기술개발 규모는 훨씬 클 것이다.

이제 기술경쟁력이니 투자비 규모와 같은 외형적인 지표는 접어두고 과연 기술개발로 만드는 부가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핵심기술과 기자재의 수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늘날 기술개발은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을 통해 투자의 정당성이 입증되고 있다.

외부효과나 스필오버(spill over) 그리고 개발러시나 불확실성의 위험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혁신에 따른 독점적 이윤’이라는 인센티브의 기대수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벤처산업이나 신산업의 성장요인을 보면 경쟁과 기술개발로 대변된다. 경쟁이라는 토양에서 창의력과 신기술의 창출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와 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에너지 R&D도 새로운 시스템으로 재구축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력시스템 기반기술에 특화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 R&D는 당연히 국가적 목표나 공익성이 큰 기술개발을 중요시하고 있다. 에너지분야는 개인이 전유하기 어려운 공익적 기술수요가 적지 않다.

에너지 분야는 무엇보다도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공익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에너지시스템,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절약, 재생에너지, 안전, 기반구축의 기술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사회적 편익이 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사적 인센티브를 유발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익적 R&D는 사업가의 몫이 아니라 국가적 책무이며 기능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민간의 역량이 공공부문을 넘어선지 오래다. 산업활성화란 구호로 성과도 막연한 기술지원보다는 공익적 기술개발에 치중할 때다.

다음으로 전력기금분야의 기술개발 시스템의 재설계다. 달라진 기술여건에 부합되는 목표와 로드맵, 그리고 전략분야를 설정하여야 한다. 과연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나 개발가능성이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체계적인 분석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통용되던 시스템과 체제로는 달라진 환경과 기술적 변화에 맞춰나가기 어렵다. 새로운 여건에 맞는 기술개발체제의 재구축 정책과 계획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기금의 R&D 사업은 기술분류조차 없다. 수십개의 프로젝트가 무질서하게 나열되는 모습이다. 새롭게 제기되는 프로젝트가 추가되다 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모한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지적이 있었으나 근본적인 변화나 대응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라도 전문기관을 통해 기술개발계획을 다시 정립할 때이다.

마지막으로 R&D 평가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도 복잡한 절차와 성과평가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형식적인 절차가 실효성이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투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사실상 해당분야 문외한에 가까운 비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제라도 객관적이고 검증가능한 성과검증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이고 실효성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성과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 의외로 쉽다. 이미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수행되었다. 이 중 얼마나 산업화 제품화 실용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활용되고 있는지를 조사해보면 된다. 기계적인 평가는 원하는 계량값을 만들어내는 평가머신의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단순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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