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 ②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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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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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발맞추는 판결 ‘고무적’
어깨만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여성계, 인권 운동차원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과거에는 성희롱이 될 수 있었을 뿐인 행위가 이제는 성추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의 의미는 성문제를 성기와 정조중심으로 보던 우리 사회의 문화가 성적자기결정권 중심으로 보는 문화로 이전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이 성적자기결정권이 추상적이고 생소한 것이어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리 생소한 말도, 어려운 말도 아니다.

중·고등학교 역사시간에 3·1 독립운동의 정신으로서 ‘민족자결권’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민족의 삶과 앞날은 민족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다른 민족은 이를 인정해줘야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단어만 바꾸어 ‘성적자결권’, 즉 성적자기결정권이 된 것이다. 성적자기결정권은 모든 남성이나 여성-남성 여성 외에 트렌스젠더, 동성애자 등 제 3의 성도 포함한다-들은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삶과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다른 성은 이를 인정해줘야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다.

현재 여성계에서는 여성발전계획 중장기 과제 가운데 하나로 배우자 강간의 인정을 정해놓고 있다.

칼을 들고 섹스에 응하지 않으면 다리를 그어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섹스를 강제 요구하는 남편을 거부하다 남편을 살해한 여성에 대해, 남편의 행동이 법적인 강간으로 인정되지 않아 아내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은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정조중심 성기중심으로 보면 침해되는 정조와 성기가 없어서 강간이 안되지만 성적자기결정권중심으로보면 강간이 된다.

따라서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심개념으로 도입한 이번 판례는 여성계가 환영해마지 않을 사건이다. 배우자 강간의 인정은 중장기로 갈 것 없이 곧 달성될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은 성범죄에 관한 학문적 이론 체계, 대법원 판례에도 전반적인 수정이 필요할 만큼 아주 획기적이다.

성범죄를 성기중심과 정조중심으로 이해하던 관행이 무너지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성범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 판례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법부가 조금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시대에 발을 맞추려는 노력을 보여준 것은 고무적이다.

또한 종전에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어깨를 주무르는 정도의 행위는 성추행으로 보지않고 성희롱으로 봤는데 이번 판결로 성희롱을 넘어선 성추행이 될 수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성희롱과 성추행의 구별문제, 강간과 성추행의 관계문제, 폭행행위의 법적 의미규정문제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성범죄와 관한 종전의 대부분의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수준의 인식전환이 필요한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라 일반판결로 했다.

대법원이 아직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강제로 오럴섹스와 항문섹스를 하더라도 여자 성기에 남자 성기가 아닌 손가락 등을 삽입하더라도 그동안은 성기중심과 정조중심으로 봤기에 강간이 아닌 추행으로 봤다.

그러나 성적자기결정권 중심으로 보면 강간이 성립된다. 성희롱과 성추행, 강간의 구별기준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깨를 주물러도 성추행이 된다고 판결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가 이제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보고 있다는 보여주는 의미있는 사건으로 보인다.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인터넷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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