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을 버리는 에너지 혁신이 필요하다
전력을 버리는 에너지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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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4.1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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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홍준희 / 경원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21세기는 포스트모던하다. 이 시대의 삶과 일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전력산업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20세기 기술과 산업의 금자탑으로서 근대성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던 성공과 명성도 어느덧 과거의 일이 되어 전통산업이라는 이름의 조연으로 바뀌어 버린지 오래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전력산업이야 말로 첨단이고 모더니티의 전형이었다. 19세기말 백열전구를 소비할 시장이 필요했던 에디슨은 전기(전력기술)를 고수익 벤쳐사업의 혁신자로 J. P. Morgan에게 소개하였고, J. P. Morgan이 이끌던 자본은 국가주도 시대의 틀을 부수고 기업주도의 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전기를 선택하였다. 또한 20세기 삶과 일의 방식도 전기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었다.

사실 오늘날의 전력산업이나 전력기술의 근본은 에디슨의 틀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에디슨은 전구를 보급하기 위하여 소켓·스위칟안전퓨즈·적산전력계(積算電力計)·배전방식 등을 고안하고, 고효율 발전기와 배전반(配電盤) 설계 등 전등의 부대설비에서 배전·발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기기체계(機器體系)를 만들었다. 1882년에는 세계 최초의 중앙발전소와 에디슨 전등회사를 창립하였고 이듬해 전구실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에디슨 효과’로 진공관과 그 후 전자공업 발달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에디슨의 후예들 또한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 자본의 기대에 부응하였고, 그 결과 전기는 이후 100년간 세계경제를 주도하여 20세기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는 위기이다. 모든 소비자를 하나의 망으로 연결하여 서비스하는 전력산업은 에너지 인프라이자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라는 두 가지 역량을 모두 가지고 에너지 상품의 생산·공급·운영·관리의 전부문에 걸쳐 극도의 효율성을 확보하고 있는 첨단의 총합체이다.

그럼에도 전력산업이 21세기의 국가경제에서 담당하고 있는 영향력이 축소된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훌륭한 아나로그'를 구축했기 때문으로, 그 결과 새로운 디지털 시대환경이 요구하는 혁신의 필요성을 늦게 깨달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마치 소니가 최고의 브라운관 TV 기술을 보유했기 때문에 LCD나 PDP 기반의 디지털 TV 부문에서 위기를 겪고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전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 기회는 기존의 성과와 자산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와해성 혁신의 기회이다. 전력부문은 기존의 에너지 시장과 설비시장 모두에서 이미 새로운 수요창출의 한계를 느끼고 있으며, 특히 디지털 컨버전스의 강화로 주요 설비와 기술의 경쟁력 기반이 파괴되고 새롭게 되는 와해혁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기존의 시장 지배자들을 상대로 이 새로운 기회를 성공시키기 위한 성공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은 기존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대담한 방식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패킷 기반의 에너지 거래체계, 비동기화된 운영방식, 마이크로그리드 방식의 분산된 지능형 아키텍쳐, 다양한 품질과 소비의 자유형식을 제공하는 멀티모달 서비스, 이러한 역량을 기반으로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에너지 서비스 사업 체계 등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본을 자유롭게 압축, 확장하는 포스트 모던한 기술과 전략으로 전기 에너지 산업을 다시 디자인하고 이를 시장에서 승부해야 한다.

이는 이제는 전력시스템이라는 용어조차 버려야 한다는 명제와도 상통된다 할 수 있다(전력시스템이란 동기성을 전제로한 이름으로 비동기화된 새로운 시스템은 당연히 전기 에너지 시스템이라 불러야 한다). 아울러 전력공학이 도전해오던 기존의 난제들은 더 이상 해결해야할 기술적 과제가 아닐 것이며(새로운 아이디어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사라진다) 더 많은 완전히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다, 특히 아직도 많은 전문가와 정책입안자, 기업 경영자들의 사고기준이 '느린 변화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기존의 틀을 깨고 혁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전략적 리더십의 구축이 필요하다. 전략적 리더십이란 이 분야의 주체들이 의욕과 방향성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공유된 비전과 목표를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미국은 연방정부 주도 하에 민간기업과 국책연구소 등의 전 역량을 결집하는 인텔리그리드(Intelli-Grid)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지원하는 에너지 정보 결합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지식기반 산업 경쟁력과 국가 에너지 기반 인프라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일본은 ECONET이라는 전력시스템 관련 기술개발 전략도 국가경쟁력 창출을 위한 전 산업부문의 기본 전략인 “유비쿼터스“라는 국가비전의 틀 아래 통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정부와 민간들이 공통된 목표를 향해 힘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분명한 목표와 꿈이 있으면 어떠한 역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와해성 혁신 즉 창조적 파괴를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존의 관행과 기업만을 보호하거나 무겁게 고려하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없다. 글로벌한 시장의 기준을 받아들이고, 비선형적 도약을 추구해야 한다. 또한 모든 것을 계획해 일사불란하게 상승곡선만을 탈 수 없는 것이 산업혁신의 특징이다.

셋째, 오늘의 열악한 상황이나 우연히 다가온 불행이 미래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주목하여 긍정적 사고를 펼쳐야 한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어온 전력산업의 하강국면은 미국 등 주요 기술 선진국들에서 인적역량의 공백을 초래하였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핵심경쟁력이 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처한 어려움의 창조적 극복과정은 오히려 미래 도약을 위한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How Long?'이라는 의문보다 'Not Long!'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속하면서도 신중한 정책결정을 해야 한다. 역동적 변화와 분산 자율의 생태계적 특성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산업혁신 전략은 짜여진 규칙 아래 움직이는 장기 게임보다 쉴새없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결단력 있게 대처해야 하는 비디오 게임에 가깝다. 직관에 의존해서라도 신속히 정책적 결정을 내리면서도 앞뒤 상황을 최대한 고려해 신중하게 실천해야 하는 이중적인 자세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힘있는 정책입안자, 전문 지식인들의 책임있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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