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박사의 응급 환자에 대한 오해
물리학 박사의 응급 환자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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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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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은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오면 의사는 환자의 윗옷을 걷어 제치고 가슴에 전기충격을 가한다. 환자는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지만 오실로스코프에 나타나는 심장 박동은 돌아올 줄 모른다.

다급해진 의사는 충격의 강도를 높여가며 미친 듯이 전기충격을 가하고,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결국 환자의 맥박은 돌아온다. 간호사의 얼굴엔 미소가 돌고, 의사는 탈진한 채 땀을 닦는다.”

위에서 인용한 글은 정재승 박사(물리학, 2003년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가 쓴 책인 ‘과학 콘서트’ 120쪽 글의 첫머리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해 알기 쉽게 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만, 위의 인용 글은 수많은 오해로 점철된 글이다.

물론 과학 현상에 대한 잘못된 글이 아니어서 문제될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오해를 할 수 있고, 더구나 위에서 인용한 장면은 필자의 전공과 가장 밀접하기에 과연 응급실에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볼 때 의사는 어떠한 입장 인지를 인용문을 토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① 의식 잃은 환자와 전기충격?

아마 정재승 박사는 심실세동에 대한 전기적 심실 제세동을 말한 듯 하다. 정재승 박사는 의식을 잃은 환자들은 대부분 전기 충격을 필요로 하는 듯이 말하지만 의식을 잃은 환자 중에 전기적 심실제세동을 하는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극히 일부분이다. 아마 응급환자 중에 가장 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이러한 장면을 말하였지만, 사실은 사실과 엄청난 거리가 있다.

② 다급해진 의사?

심실 제세동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의사라면, 어떤 환자라 하더라도 다급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어떤 중환자라 하더라도 흔들림이나 다급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주 냉정하다.

응급환자를 앞에 두고 다급해지는 의사라면, 아마도 응급환자를 처치할 능력이 없는 의사일 뿐이다.

사실 이러한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는 절대절명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응급의학과 의사에게는 다른 보통환자보다 더 치밀함과 철저함을 요구하는 일상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의사는 참으로 이 순간에는 비정하고 냉정하다. 환자가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감정이 거의 없다. 또 이러한 중환자라 하더라도 의사는 냉정하고 비정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독자 분들께서도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권한다.

③ 충격의 강도를 높여가며?

심실 제세동, 혹은 전기 충격은 최대치가 정해져 있다. 여러 번 되풀이 할 때는 정해진 최대치를 되풀이 할 뿐이지 충격의 강도를 높여 가지는 않는다. 또 불행하게도 전기충격을 가해 심장의 맥박이 돌아와 살 환자라면 대부분 처음의 전기 충격에 심장의 맥박이 회복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재승 박사의 묘사대로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심장의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호사의 미소도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 하면 이러한 환자들, 수 차례의 전기적 심실 제세동으로 심장의 맥박이 겨우 돌아온 환자라면, 곧 머지 않아 다시 심장이 멈출 가능성이 아주 많고, 설령 살아남더라도 식물인간, 뇌사가 되는 경우가 80∼90%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정재승 박사의 글을 비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의사가 아니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오해이기 때문이다. 아마 의사, 특히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정재승 박사의 글에 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사가 아니라면 치료의 과정에 대하여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재승 박사의 오해가 아니라, 이렇듯 의학에 대한 이해가 깊은 물리학 박사도 정확히 알기 어려운 의학에 대해, 온갖 사이비와 돌팔이들이 만병통치를 주장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으나, 지면 관계로 이만 그치는 바임을 말하고자 한다.

김승열 / 강릉 동인병원 응급의학과장, 영동 응급의료 정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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