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이에도 강제추행죄 될 수 있다
부부사이에도 강제추행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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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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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지법은 아내를 성추행한 남편에 대해 강제추행죄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는 부부사이에서는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지 않던 대법원 판례를 뒤집어 여성계로서는 의미가 큰 판결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언론사의 사설이나 기사를 보면 사안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으며 본질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사로 한겨레신문 23일치 사설 '부부사이 강제추행 유죄'를 보면 “부부 사이의 폭력을 동반한 성관계의 피해자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부부 사이의 성적 의무를, 폭력을 동반한 강제적인 것까지를 포함하여 폭넓게 해석했던 탓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우리 법과 법원이 부부사이의 강제적인 성행위와 추행행위를 유죄로 보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부부사이의 폭력을 동반한 성관계의 피해자는 그동안 법적인 보호를 받아왔다. 다만 그 보호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를 통해서 보호받은 게 아니라 폭행죄와 강요죄를 통해서 보호받아온 것이다.

당연히 "부부사이의 성적의무에도 폭력을 동반한 강제적인 것까지 포함되어왔다"는 말도 틀렸다. 부부사이의 성적의무에 폭력을 동반한 강제적인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강요죄나 폭행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본질은 부부사이의 강제추행이나 강간죄를 강제추행죄와 강간죄로 처벌할 것이냐아니면 강요죄와 폭행죄로 처벌할 것이냐다.

이 문제에 답을 하려면 먼저 부부간의 강제추행과 강간을 법이 금지하고 있어서 부부간의 강제추행이나 부부간의 강간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부부간의 강제추행과 강간 억제 그 이상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형법은 강간과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을 부녀의 '정조'로 정했다. 즉 강간죄나 강제추행죄는 부녀의 정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조라는 것은 현재의 남편 장래의 남편, 과거의 남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강간과 강제추행할 때는 정조가 침해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이 때는 강제추행죄와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우리 대법원이 본 것이다. 물론 강제추행죄과 강간죄가 되지 않을 뿐 그보다 형량이 적은 강요죄나 폭행죄로 처벌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강간과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을 부녀의 정조로 보는 논리구성은 여성계의 입장, 성평등의 이념에 따라보면 전혀 납득할 수 없어 부부사이에도 강간죄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자고 주장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부부사이의 강간과 강제추행을 법이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죄와 폭행죄를 통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부부사이에는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 맞서왔다. 여성계는 법조계의 이러한 논리를 극복하지 못해 부부간 강간죄와 강제추행죄 인정을 여성계의 중장기숙원과제로 넘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조계와 여성계의 대립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은 원론에 있다. 원론에서 해결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보호법익이 정조에서 성적자유 내지 성적자기결정권으로 바뀌었다.

형법개정에서도 정조에 관한 죄라는 제목이 사라졌다. 정조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기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부부사이에도 강간죄와 강제추행죄는 인정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법조계에는 이러한 성적자기결정권이론이 아직 체계가 잡혀있지 않는 상황이다.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앞으로 많은 판례들이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를 강간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정조가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서 강간죄가 될 수 없었고 강제추행죄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는 논리로 강간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 하나의 사례다.

이번 형사지법이 대법원에 가서도 그대로 유지될지는 아직 유보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달라진, 수준 높아진 성문화를 반영해야 한다. 법조계의 각성과 분발을 바란다.

< 이승훈 / 인터넷 저널리스트·인터넷 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