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칼럼] 판도라-신화, 영화, 그리고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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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3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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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제우스가 건네준 항아리, 그 속에서 온갖 재앙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놀란 판도라가 항아리를 닫았을 땐 희망만이 남겨져 있었다. 왜 재앙이 가득한 데에 희망이 들어있었을까.

괴테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으로서 희망은 악인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가하면 모든 축복을 담은 항아리로 묘사되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이 어리석게도 항아리를 열자 축복은 모두 날아가 버리고 희망만이 남았다. 어찌됐든 구름 건너 켠 은색의 희망이 남아있고 마지막 심판은 인간에게 달려있다.

히로시마 폭탄과 후쿠시마 사고로 원자력은 재앙의 대명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방사선보다 더 무서운 건 눈에 보이는 온난화가 아닐까. 막연한 회색공포로 명백한 기후변화를 뒤로 한다면, 그래서 에너지 시계를 뒤로 돌린다면 이는 미래에 대한 현대의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인류가 석기에서 철기로 넘어간 건 돌이 닳아 없어서가 아니라 철이 더 쓸모 있었기 때문. 철이 없는 현대 사회를 생각할 수 없듯, 핵이 없는 미래 세계를 상정할 수 없다. 물론 폭탄이 아닌 원전 이야기. 체코 프라하 오바마의 연설도 ‘핵무기 없는 세상’이었다. 핵 없는 세상이 아니라.

지난번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 ‘판도라의 약속’은 원자력이 탄소로부터 지구촌 환경을 보호하고 기아로부터 수십억 빈민을 구원할 에너지로 다시 날 수 있을지에 대해 묻고 있다. 원자력이 핵무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인되어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곡해가 원자력의 본질을 흐려왔다. 오늘날 우리는 핵폭탄에 쓰이지 못할 원자로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방사선이 몸에 미치는 경이로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방사선을 이용해 기후변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강력하고 비범한 통솔력이다. 2030년까지 탄소를 내지 않고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값싼 에너지 개발목표를 세우고, 젊은 기술자들을 길러내야 한다. 여태까지 우리는 에너지를 특정 대기업들이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방치해 두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들에겐 장기안목도 없으며, 사리사욕으로 국민안녕을 뒤로 할 수 있다. 깨끗한 에너지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통솔력과 자금력이 필요하다. 옳은 선택을 위해서는 기술자들 손에 힘을 실어줄 결단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21세기 방식으로 20세기 난제인 기후재앙에 대응할 수는 없는 걸까.

후쿠시마는 원전 안전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안전이 더욱 강화된 원전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반핵단체들은 체르노빌을 두고 방사능 재앙의 심각성을 말한다. 그러나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와 세계보건기구는 “직접 방사선에 노출돼 피해를 입은 사망자 수는 56명이며, 갑상선암 사례는 2000여건 발생했다. 아직 피폭으로 인한 백혈병 또는 선천적 장애의 수치는 늘지 않고 있다. 방사선이 유발한 잠복성 암 때문에 약 4000건의 사망이 추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탈핵의 또 다른 구멍은 현실적 에너지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라늄 1그램에 들어있는 에너지는 유연탄 3톤과 맞먹는다. 한국에서 원자력은 전체 전력의 3분의 1을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공급한다. 재생 에너지는 현재로서는 경제성도 문제지만 간헐성 때문에 앞으로도 틈새를 메우는 역할 밖에 할 수 없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은 원자력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늘어가는 전력 수요에 맞서 멈춰선 원전 대신 화석으로 가는 것은 분명한 퇴행이다.

사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은 석탄보다 더 낮다. 하지만 원전에선 오랜 시간 방사선이 나오는 폐기물이 만들어진다는 문제가 있어 철저한 사후관리가 선결사안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판도라의 항아리를 열어 마지막 희망을 국민과 함께 붙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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