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초원 빠우에서 만난 화가
몽고초원 빠우에서 만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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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2.10.0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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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구 선생
▲ 앞줄 하얀모자 왼쪽분이 이형구 선생

무더운 한여름 가을하늘이 높다고 하지만 한여름 태풍과 폭우를 피해 내몽고 초청으로 어쩌다가 하루 갠날 내몽고 본지 창간 특집취재 중 서양화가 이형구 선생을 내몽고 초원 빠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이형구 선생 : 초원 위의 하늘을 한 번 보시지요. 눈이 부실만큼 파란하늘 하얀 뭉게구름이 연못 위의 연꽃 터지듯 하늘이 열렸을 때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지는 파란하늘은 얼마나 멀고 그윽하던지 황혼의 몽고의 여름이 제멋 아닌가요.

그 먼 아름다움 넋 놓을 수밖에 없는 아득한 붉은 빛이… 이런 풍경들을 처음 대하니 내몽고 초원의 여름은 먼 것이고 그만큼 감동은 초월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여름을 휴가철로 삼는 까닭도, 내가 항상 머물던 곳이 아닌 먼 곳 내 이름 석자 밝히지 않아도 좋을 그윽한 곳으로 잠깐이나마 떠나고 싶어서는 아닐지 한여름 멀고먼.. 이곳 몽고초원에까지 오게되었습니다.

내몽고 초원에서 바라본 풍경은 가장 절박한 의미에서 또 가장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존재의 무덤이 되기도 하고 까마득한 자궁이 되기도 하고…

오늘 우리들의 짧은 만남은 귀한 인연입니다. 이곳 이역만리 오지몽고의 초원에서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 아니지요. 30대 초반부터 국내외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해 온 이형구(서양화가)선생을 만나 뵈었다. 내가 평소 운신하던 폭에서는 낯설지 않은데서 활동하던 분이어서 말문을 트기가 비록 쉬웠다.

내가 하나를 물으면 선생은 질문 서너개를 건너짚어 재미있는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며 풍성하게 응답을 하였다.

“그림이란 생각을 겹쳐놓은 것이지요.”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싶은데 이내 “그리다 겹친 것을 떨어뜨려 집 짓듯 다시 차곡차곡 쌓아 가는 일이지요”한다.

그 말씀은 작품의 의미나 내용에 앞서 윤리의 차원에 놓이는 것이겠고 그만큼 작업이라는 인문학적 행위는 내 한몸의 덕을 쌓아 가는 미적 업무 일 뿐이다.

그러니 그 일이 작가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고되고 심지어 가혹까지 하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작업의 형이상학적 차원을 이념에 때묻지 아니한 종교외 윤리의 보편성에 기대어 이해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선생이 과거에 한 연작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다. 물감이며 붓이며, 팔레트, 평소 쓰던 화지, 화구나 살림살이에서 사용하던 평범한 물건들을 소중하게 관리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의 작업에 헌신했던 오브제들은 시간이 오랜 것일수록 낡고 허물어져간다.

이제 나는 그들의 봉사에 감사하면서 구석진 자리에 놓여있던 오브제를 하나둘씩 불러내어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오브제는 그 부피 안으로 파고들어 가기를 희망하였다.

자기 체구에 맞게 살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마음씀씀이, 미학적 관조에 힘입어 세상은 나아가 우리자신 또한 새롭게 태어난다. 나를 비워두니 어느새 그 자리에 미쳐 보지 못한 어느 세상이 둥지를 틀고있는게 아닌가.

최근 수년동안 이형구 선생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고향마을의 좁은 길을 내려오게 한다. 그림은 숱한 고행이야기 띠로 흩어지고 이 띠들은 다시 다른 띠와 만나 얼싸안으며 비로소 존재할 터전과 미의 생명을 얻는다.

그 존재들은 숨을 쉬며 우리들 가슴에 다시 숨쉬게 한다. 이제 비로소 하얀빛이, 바람이 드나들며 너와 나의 시선이 오가며 생명의 숨결이 흐른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목, 점점 문명의 세계가 가까워질수록 본능적으로 반가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문명이 인간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가 하는 생각에 잠시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위대한 자연, 신의 은총, 그리고 인간의 하나됨, 이형구 선생과의 다시 만남, 다시 한번 장엄하고 아름다운 신의 축복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윤호철 기자 yaho@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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