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숲
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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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3.10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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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의 꽃이 불타올라 사람을 압도할 때 우리는 안다

때로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본다는 게 얼마나 기쁨인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게 아니다. 겨울이 가고 이제 봄이 왔다는 문장에 세뇌당한 사람이라면 겨울과 봄이 역할을 물려주고 이어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들판에서, 산골에서 살다 보면 겨울과 봄은 경계가 명확한 게 아니다. 이런 애매한 경계를 두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구절이 나왔으리라. 꽃샘추위라는 말도 나왔을 테고.

이런 경계의 모호함은 남도로 갈수록 심해진다. 서울사람들이 겨울이라고 여기는 1월과 2월, 남해의 섬에 들르면 거기 동백이 피어 있다. 주체할 수 없는 정념을 드러내고 있는 붉디붉은 꽃. 남해, 그 넓고 깊은 바다로도 쉬 지워지지 않는 그 선연한 색깔. 바다를 배경으로 해서 불타고 있는 그 동백 한 송이는 어쩌면 이 허허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남해의 섬에서 동백꽃을 접하면 쉬 잊지 않는다. 그 동백은 늘 마음에 둔다.

동백꽃을 보려면 겨울에 남해의 섬으로 찾아들어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남해의 어느 섬이든 거기에는 동백 몇 그루는 있다. 고통스러운 삶이라고 해도 잘 찾아보면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듯이.

섬의 동백꽃은 3월에도 피지만 사실 3월이 되면 혼자서 섬으로 동백꽃을 보러 가기에는 때가 늦었다. 무엇보다도 혼자서 떠나는 여행의 맛이 사라진다. 들판에, 산등성이에 듬뿍 듬뿍 내리는 햇살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곱씹는 게 어울리지 않는 탓이다. 3월쯤 되면 가족이든 친구든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길을 떠나야 한다.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 동백꽃 속에 푹 파묻힐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남 강진 백련사 아래의 동백숲이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여기에 덧붙이는 게 사족이 되겠지만, 백련사는 고려 고종 시대 참회와 정토를 강조한 백련결사운동의 중심지였다. 비슷한 시기 송광사에서는 정해결사 운동이 있었고. 이 두 흐름이 고려 불교, 나아가 현재의 한국 불교의 중요한 흐름이 됐다.

백련사에서 산등성이 하나를 넘으면 다산초당이다. 강진 도암면 만덕리의 다산초당과 정약용의 유배 생활 또한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백련사 아래 동백숲에 들렀다가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많은 이들과 보조를 함께 해 정약용의 발바취를 더듬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개인적인 견해만 덧붙여 둔다.

백련사 아래의 동백숲은 동백만으로 이루어진 숲이며 모든 사람을 그대로 품어 준다는 게 기껍다. 미당에 의해 유명하게 된 전라북도 선운사 동백숲은 철망 너머로 바라만 보아야 한다.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동백 과 철망을 사이에 두고 서 있노라면 유명 가수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제지당한 10대 팬의 꼬락서니가 떠올라서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잡지에 자주 소개되는, 동백꽃이 유명하다는 여수 오동도는 전체가 동백숲은 아니다. 남해안에 흔한 온대수림이다.

백련사 아래의 동백숲은 동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파리들이 만드는 윤기, 흐드러진 꽃들이 보여주는 불타오름이 사람을 압도한다. 때로는 압도당해 본다는 게 얼마나 즐거움인가?

울울창창한 동백숲에서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은 바라보아도 좋다. 그것은 빛이 돼 하늘을 밝히는 듯하다. 영혼이 밝아진다.
동백꽃이 져서 바닥을 덮고 있을 때에 그걸 내려다보아도 역시나 좋다. 그것은 대지가 흘려낸 선연한 핏방울처럼 다가온다. 몸이 싱싱해진다.

동백숲에 들었다가 떠나기 싫으면 거기서 밤을 세워 볼 일이다. 어느 시인은 그랬다. 내 마음의 동백꽃을 지우기 위해 동백숲을 찾았다고. 지우지 못하고 마음에다 또 한 송이 동백꽃을 달게 된들 그것이 허물이겠는가?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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