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의 성벽
수원 화성의 성벽
  • 에너지데일리
  • webmaster@energydaily.co.kr
  • 승인 2003.03.17 0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부지향의 세상에서 ‘우리’를 찾아갈 때
그 표상으로서 성벽은 거기에 서 있다

성(城)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성벽이다. 성벽이 둘러쳐져야만 그게 성이 되는 까닭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흔히 잊고 산다. 성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문(門)이라고들 말한다.

문에 관한 기억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하였으리라.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문을 기억하고 그 나머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 사람들은 한성(漢城)의 존재는 잊고 남대문과 동대문만을 알고 있다. 전주 사람들 역시나 전주성에서 풍남문만을 기억하고.

수원 화성(華城)은 다르다. 수원 사람들은 화성에서 문과 벽을 동시에 떠올린다. 화성의 성벽은 잘 보존돼 있고 그게 사람들의 뇌리에 살아 있는 것이다.

화성의 이곳저곳을 걸어 보면 문보다는 성벽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수원성의 대문들, 그러니까 팔달문이니 장안문이니 하는 것들이 여느 성의 대문보다 못해서가 아니다.

화성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데는 이런 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해 주려는듯이 화성의 문들은 여느 성의 것들보다 탁월하지만 그게 성벽으로 향하는 시선을 다 가져가지는 않는다.

물론 화성에 가서 성벽을 보고 오는 이는 드문 듯하다. 그들은 화성이 지닌 역사적인 사실들을 되새기기 바쁘다. (화성은 정조대왕의 화려한 행차가 이뤄졌던 곳이다. 거기에는 사도세자를 향한 효심이 있다. 팔달문에는 실학정신이 깃들이어 있다. 그리고 ….)

역사적인 사실에 짓눌려 버리고 나면 성벽만을 보기는 어렵다. 앞서 간 이들이 남겨 놓은 이야기의 수인(囚人)이 돼 버리고 나서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화성을 둘러싼 이야기들, 너무나도 많이 반복된 그 이야기들을 벗어던지고 어느 새벽이나 해거름에 그 성에 가면 거기 벽이 보인다. 하나, 하나의 돌이 모여서 이루어낸 그 벽이.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서 성벽은 바깥과 안쪽을 나누는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화성의 안쪽에도 바깥쪽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현실이 그러하듯이 문물의 발달이 성벽의 의미를 이미 지워 버린 탓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성벽에 눈길을 보내는 것일까? 왜 많은 이들이 만리장성을 찾아가고 화성의 성벽을 바라보는 것일까?
성벽은 ‘우리’를 일깨워준다. 성벽은 바깥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만 실제 그렇게 쓰이는 때는 아주 짧았다. 평소에는 존재하고 있음으로써, 어떤 움직임도 없이 다만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써, 성벽은 성안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 성안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느꼈으리라. 이렇게 말하면 아주 까마득한 과거 같지만 실은 백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성안에서 살지 않게 된 이후 백년, 요즘 세상은 갈수록 외부지향이다. 이에 따른 비인간화니 소외니 하는 이제는 낡아 빠진 사회 용어들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용어들이 말하고 있는 사회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정보화시대는 정보에 의해 인간 삶이 풍요로울 것이다. 그 정보라는 것도 결국은 외부 지향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것. 혹은 권력이나 집단이 내게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타인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언행에서 선택적으로 가져오는 것. 어떤 식이든 정보는 외부와 연결돼 있다. 한 마디로 외부지향이다.

외부지향이 시대에서 사람은 무의식 중에 내부를, ‘우리’를 찾는다. 그런 찾아봄에 어울리는 한 표상으로서 성벽은 거기 있다. 바람과 햇볕을 받아들이고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발길도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그렇게.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주)에너지데일리
  • (우)07220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38길 13-7 주영빌딩 302호
  • 대표전화 : 02-2068-4573
  • 팩스 : 02-2068-45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병훈
  • 제호 : 에너지데일리
  •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719
  • 등록일 : 1999-07-29
  • 인터넷등록번호 : 서울 아 01975
  • 등록일 : 2012-02-16
  • 발행일 : 1999-09-20
  • 발행인 : 양미애
  • 편집인 : 조남준
  • 에너지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너지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nergydaily.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