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전 청렴도 제고의 전제 조건
▣ 한전 청렴도 제고의 전제 조건
  • 에너지데일리
  • webmaster@energydaily.co.kr
  • 승인 2003.05.19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렴각서를 강요하는 고압적 자세 지양해야
비리 근절을 위한 구조적 문제점 파악 시급
외유내강을 위한, 실천 가능한 제도가 필요



“부패 방지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내년에도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사장직을 사임할 각오이다."

한전 강동석 사장이 지난달 29일 본사 회의실에서 청렴계약제 실시와 관련한 업체 간담회에서 그런 각오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사임을 전면에 앞세우며 강한 톤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듯하지만 다시 그 말을 되새기다 보면 '어차피 내년에는 임기가 끝나는 것 아닌가?'하고 되묻게 된다. 임기 만료 시점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이나 남은 시점을 가지고 시한으로 정해두고 사임 운운한 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한전에서 청렴도 제고를 외쳐 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장은 물론 본사 임원과 지역의 지사장들은 한결같이 투명한 경영을 강조해 왔다. 그것이 올해 들어서는 '청렴'이란 단어로 수렴되었고 지난 4월 하순에는 지방 지사마다 '청렴도 제고 교육'을 실시했다. 여기에 초빙된 강사는 대개 대학교수이거나 시민단체에서 부패반대를 외쳐온 이들이었다.

외양으로는 강사로서 아무런 하자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그 강사들은 한전의 고질적인 부패나 구조적인 문제점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원칙론적인 도덕론을 내세우는 게 대부분이었다. 한전 임직원들에게 원칙론을 교육하게 되면 청렴도가 제고 되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다고 한전의 간부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최근 한전의 청렴도 제고와 관련된 행동은 미덥지가 못한 느낌이다. 이전의 언행은 '초일류기업'의 이미지에 걸맞은 것이었는가?

부패 원천으로 지목돼 온 공사관련 금품수수와 관련해 한전은 '청렴계약 이행각서'와 '청렴계약 특수조건'을 내용으로 한 각서 작성을 공사업체에게 요구하고 있다. 공사업체가 작성해 한전에게 일방적으로 제출하는 각서이다. 청렴계약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곳은 공사업체들이므로 그들에게서 각서를 받아 둔다는 식이다.

‘청렴계약 이행 각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돼 있다.

"입찰, 계약체결 및 계약 이행과 관련하여 관계 직원에게 금품 향응 등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에는 계약체결 이전의 경우에는 낙찰자 결정 취소, 계약 이행 전에는 계약 취소, 계약 이행 이후에는 당해 계약의 전부 또는 일부 해지하여도 감수하겠으며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각서를 두고 공사업체의 어떤 대표이사는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환자에게 받는 수술동의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수술동의서를 읽어 보면 의사가 책임지겠다는 말은 없는데 청렴이행 각서에서 한전도 그런 식이라는 뜻이다. 사실 한전은 단순한 책임 회피 이상이다.

공사업체에게 한전은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공사업체들이 한전에게 느끼는 체감 온도는 사업의 동반자 아닌 상부 기관인 것이다. 이와 같은 군림과 복종의 관계에서 공사업체는 청렴을 지키기 어렵다. 상부기관을 대접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한전은 공사업체에게 청렴하겠다는 각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한전이 군림하지 않는다면, 한전이 청렴하다면 공사업체는 청렴하게 될 것이라는 공사업계의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너무나 평이하지만 절대적인 이 진실을 한전이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청렴도 제고는 헛구호에서 멈출 것이다.

한전의 의식 개혁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현가능한 제도 마련이다.

현재 한전은 청렴도 제고를 위해 인사기준안을 점검 중이며 경미한 금품수수에 관해서도 중징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인사기준안에는 금품수수와 관련해 징계를 받은 직원의 불이익을 확대하고 다면 평가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인사기준안 개편의 틀이 잡혀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결국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이미 비리가 드러난 직원의 징계 수위를 높이는 것보다는 비리가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

1년 후에 조건부 사임하겠다고 말하거나 한전 내부사정을 모르는 강사를 불러들여 한 시간 동안 강연회를 연 것으로 청렴도가 제고될 것으로 믿는 듯한 한전의 모습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청렴계약 이행각서'를 공사업체에게 요구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전은 비리의 최대 원천을 공사업체와 직원과의 금품수수라는 점은 알고 있는 듯하다. 이런 관계 근절을 위해서 어떤 제도가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를 한전은 찾아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럴 때만이 초일류는 아니더라도 일류 기업으로 한전이 남아 있게 되며 민영화 반대도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명칭 : (주)에너지데일리
  • (우)07220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38길 13-7 주영빌딩 302호
  • 대표전화 : 02-2068-4573
  • 팩스 : 02-2068-45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병훈
  • 제호 : 에너지데일리
  •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719
  • 등록일 : 1999-07-29
  • 인터넷등록번호 : 서울 아 01975
  • 등록일 : 2012-02-16
  • 발행일 : 1999-09-20
  • 발행인 : 양미애
  • 편집인 : 조남준
  • 에너지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에너지데일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nergydaily.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