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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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0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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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千秋)의 정화(精華)를 모아들인 사람과 빛낸 사람들

그들의 숨 가픈 시간이 어려 있는 또 하나의 문화재


“Museum, another one?"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03년 근대회화 명품전’을 보러 갔다가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의 흉상 앞에 서 있는 내게 서양 여자가 그렇게 물어왔다. 여자는 묻고 난 후에도 간송미술관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미술관, 다른 게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내가 해석한 그 질문의 속뜻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이렇게 작은 건물이 그 유명하다는 간송미술관이 아닐 테고 다른 건물이 있는 것 아니냐?”

나는 간송미술관을 가리키며 힘주어 말했다.
“This only."
10여 년 전에 이제하의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읽을 적 ‘것뿐이다.’라는 구절이 좋았다. 소설 속의 인물은 ‘이것뿐이다.’를 더 줄여서 ‘것뿐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좋았던 것이다.

구차스럽지 않은 하나. 그것은 외로움이나 동떨어짐이 아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체로서 아름다운 하나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것뿐이다.’라는 말을 써먹고 싶었다. 그럴 기회는 좀체로 오지 않았다. 드디어 그런 기회가 온 거였다. 당연하게 나는 그 말을 했다.

‘것뿐이다.’
(소설에 나온 그대로 아닌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게 조금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 마음 속으로는 ‘것뿐이다.’하고 말했던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것뿐이다.’라는 말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다. 1938년 8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화각(保華閣)으로 문을 열어서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곳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는 가히 ‘이곳 뿐이다’라는 말을 들어도 충분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 雲鶴文梅甁) 같은 청자. 청화백자 양각진사철채난국조충문병로 대표되는 백자. 훈민정음을 위시한 문화재.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한 불교 문화재. 김정희의 <완당행서대련>으로 대표되는 서예. 정선의 <고사관폭>, 신윤복의 <청금상련>으로 이어지는 그림...... . 수백점의 보물급 유물.

(간송미술관이 소유하는 국보가 가장 많이 진열된 때는 내 기억으로는 1998년 ‘보화각 60돌 기념전’이었다. 당시 나는 간송미술관에서 국보급 미술품을 ‘내 바로 앞에다 놓고’ 보았다. 내가 가장 관심 있었던 ‘청자상감 운학문매병’ 앞에서 한 시간을 할애했다.)

간송미술관을 말할 때 전형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배우개장 근처에서 1906년에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였는데 그는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고서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술사학자 오세창(吳世昌)의 지도 아래 고서 수집에 나선 전형필은 그림과 도자기로 영역을 넓혔고 스물아홉 때인 1934년, 성북동에 일만 평의 땅을 사서 그 자리 건물에 북단장(北壇莊)이란 이름으로 수장품을 간수했다.

1938년엔 새건물을 짓고 오세창으로부터 보화각이란 이름을 받았다. (지금도 보화각이란 현편은 간송미술관 입구에 붙어 있다.) 당시 오세창은 지석(誌石)에 "여기 모인 것은 천추(千秋)의 정화(精華)로다."라고 말했고 그 선언은 지금껏 유효하다.

왜 그토록 간송 전형필은 생전에 문화재를 모았던 것일까? 당시 일제 강점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최완수 간송미술관장의 전형필 평이 그 답을 말해 준다. “간송은 문화재 수집과 보호에 신명을 바친 광복지사의 대표이다.”

전형필의 사후 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명했다.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수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하여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발족된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정기전과 특별전이 열린다.

간송미술관에는 문화재를 지켜오면서 그곳에 빛을 더 해온 많은 사람들이 있다. 최완수 관장을 비롯한 간송미술관 사람들이야말로 또 하나의 전형필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문화재는 모으기는 어렵지만 그 광채가 제대로 내뿜어지도록 아름다움을 찾고 그걸 알리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별다른 외적 모양새가 없는, 시골 초등학교의 작은 교실처럼 밋밋한 2층 콘크리트 건물인 간송미술관. 그걸 보고 있노라면 천추의 정화를 모아들인 사람과 그걸 지켜온 이들의 숨 가픈 세월이 느껴진다.

크고 화려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것은 담담한 자태로 세류에서 벗어나 또 하나의 문화재가 돼 있다.
“간송미술관이 겪어 온 세월은 사사로운 시간이 아니다.”

1998년 ‘보화각 60돌 특별전’에서 한겨레신문이 내린 평가야말로 왜 간송미술관 자체가 또 하나의 문화재가 돼야 하는지를 말해 준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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