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
이 땅의 모두에게 유월은 잔인한 달로 이어져 왔으며
임진각
이 땅의 모두에게 유월은 잔인한 달로 이어져 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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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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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책임은 내 자신부터 져야 한다는 걸 되새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임진각을 가려면 임진강역 표를 사야 한다. 2003년 6월 현재 1천 3백원이다. 전철표 두 장 값도 안 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임진각이, 그러니까 휴전선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서울역의 매표소에는 기차역과 그것이 속한 철로의 이름이 나와 있다.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전라선, 장항선...... . 임진강역은 있어도 그것이 속한 철도의 이름이 없다. 임진강역이 속한 철로는 ‘서울 교외선’라는 두루뭉실한 이름으로 말해진다.

서울에서 임진강역으로 가는 철로의 이름이 원래부터 없어서인가? 아니다. 경의선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돼 경부선, 호남선과 함께 이 땅의 철로 역사 첫 장에 기록되는 경의선. 그것은 남북분단 이후 남북으로 소통되지 않았다. 도라산역 이남의 동강난 철도를 경의선으로 부르지 않게 된 것이다.

강원도 고성군은 휴전선에 의해 둘로 나누어졌어도 우리는 그 군을 고성군으로 부른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경의선이 비록 가운데가 잘린 철도라고 해도 그것이 분면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 이름을 써야 한다. 왜 그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일까?

경의선이란 이름에는 남북의 소통이라는 의미가 실린다. 경의선은 서울에서 개성과 평양을 지나 신의주에 닿기 때문에 경의선이라는 이름만 불러도 우리의 마음은 이미 북으로 날아간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만주로 나아가 남쪽으로는 중원으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 닿는다. 철의 실크로드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북한을 바로 기억시키는 이름이어서 경의선이란 이름을 쓰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임진강역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기차는 쉬엄쉬엄 가지만 서울역을 떠난 지 한 시간 반이면 임진강역에 닿는다. 다시 한번 확인되는 이 가까운 거리.
기차역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임진강역의 역전에서 바라보면 바로 옆에 임진각이 있다.

서울에서 (시청 기준으로) 북서쪽으로 약 54km 떨어져 있는 임진각은 1972년에 지어진 북향 실향민을 위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밋밋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근래 들어서 임진각이라고 부를 때는 임진각 건물만이 아니라 그 주위의 북한관, 한국전쟁 때 사용된 무기가 전시된 야외전시장, 철도 종단점, 실향민이 명절 때면 제사를 올리는 망배단, 자유의 다리 등을 포함한 주변 지역을 말한다.

임진각을 가는 길에 관광용으로 전시된 기차를 만난다. 철마(鐵馬)라고 불리기도 하던, ‘미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예전의 기차이다. 그 옆에는 철도 종단점이라고 쓰인 팻말이 박혀 있다. 2003년 6월 14일 남북은 경의선 연결을 공식 선언하는 행사를 가졌으나 철도 종단점이라는 팻말은 철거되지 않고 있다. 전쟁 이후 반세기가 더 지났으나 이 땅의 많은 사람들 마음에 남북 대립의 이데올로기가 건재하듯이 그렇게.

50년대 전쟁을 주도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60년대에서부터 80년대까지 한반도를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 소련 붕괴 이후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갔다고들 했으나 한반도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21세기가 되도 여전히 이데올로기는 이 땅에서 건재하고 있다.

그 생명력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 분단 상황이 존속하는 한 생명력은 이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익을 보는 특정 집단이 이 땅에서 활개치고 있기 때문인가? 전시된 기차 옆에서 그런 질문을 던지다가 나는 서울역 매표소의 철로 이름들 가운데 경의선이 없다는 걸 다시금 떠올린다. 경의선이 존재하는데도 그 이름을 잊고 살아 온 내 자신의 삶, 이것이 바로 대립 이데올로기가 뿌리박은 토양 아닌가?

유월은 잔인한 달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에게도, 그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전쟁 이후 세대에게도. 그리고 이 잔인한 달이 매년 반복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북쪽을 바라본다. 임진강이 보인다. 장마철이라서 몸이 불어난 임진강이, 남의 냇물이든 북의 냇물이든 다 받아들인 그 강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정법종 기자 power@epow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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